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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 아티스트/타

'천상의 화음' 트윈폴리오(송창식, 윤형주) [프로필/스토리] - 하얀 손수건, 축제의 노래, 고별, 더욱 더 사랑해, 슬픈 운명, 행복한 아침, 웨딩케익, 사랑의 기쁨 [노래/가사/멜로디악보] 외 노래 모음

 

좌-윤형주, 우-송창식


(트윈폴리오 프로필)

결성 1967년 11월
데뷔 1969년
활동시기 1960, 1970, 1980
멤버 송창식(1947년 2월 20일)
윤형주(1947년 11월 19일)
이익근

 

(송창식 프로필)

출생
1947년 2월 22일
경기도 인천부 신흥정
(現 인천광역시 중구 신흥동)
국적
대한민국
직업
싱어송라이터
소속
트윈폴리오 (1967 ~ 1969)
데뷔
1968년 트윈폴리오
 

(윤형주 프로필)

출생
1947년 11월 19일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
신체
174cm
학력
대광중학교 (졸업)
경기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의예과 / 수료·명예학사)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의학 / 중퇴)
고신대학교 (선교학 / 명예박사)
현직
한국해비타트(이사장)
종교
개신교(예장통합)
데뷔
1971년 동아방송 라디오 ‘0시의 다이얼 DJ’

 

 

'트윈폴리오(Twin Folio)'는 1960년대 후반 활동한 2인조 남성 포크(통기타) 그룹입니다. 멤버는 당초에는 윤형주와 송창식, 이익근의 3인 그룹이었으나, 후에 이익근이 빠지고 윤형주와 송창식 2인 체제로 활동하였습니다.  

두 멤버의 어쿠스틱 기타(통기타) 연주와 감미로운 보컬 화음으로 초기 한국 포크의 ‘고운 노래’를 널리 공유했습니다. 1960년대 중후반 대학생 아마추어 포크 가수들의 산실인 무교동의 음악감상실 세시봉(C'est Si Bon)에서 1967년 말 세시봉 트리오라는 3인조 그룹(윤형주, 이익균, 송창식)으로 결성되었다가 1968년 초 2인조로 축소되어 트윈폴리오로 개명했습니다.

 

 

그들은 서울의 음악감상실과 생음악 살롱을 중심으로 활동했고 TV와 라디오에도 간간히 출연하였습니다. 1968년 12월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가진 리사이틀(콘서트)을 성공적으로 수행했고, 1년 뒤 같은 곳에서 고별 리사이틀을 가졌습니다.


송창식

 

윤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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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아티스트 트윈폴리오 스토리

2. 대표곡 감상 / 가사 / 멜로디악보

3. 아티스트 트윈폴리오 노래 모음


1. 아티스트 트윈폴리오 스토리

 

국내에서 최초로 세대간의 경계선을 그은 음악 장르는 단연 포크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포크 음악은  1970년대 군부정권에 맞선 저항과 반항의 정신을 뿌리 내리는데 중추적 역할을 해냈습니다. 그것은 운동권이란 이름의 민주투쟁과 더불어 음악 역사상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되었으며 맥주와 청바지, 통기타로 상징되는 젊은 문화의 박제가 되었습니다.

포크 음악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전, 우리의 대학생들은 음악 감상실을 통해 자웅을 겨루며 이미 폭넓은 인프라를 구축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세시봉', '오빈스 캐빈' 등을 통해 이장희, 윤형주, 조영남, 이이근, 강근식, 유종국 등의 캠퍼스 스타들이 진을 치고 있었으며 이후 포크를 몇 단계 끌어올린 최초의 창작 음악인 한대수, 김민기, 양희은, 서유석 등, 당대를 주름잡은 많은 스타들이 이 자리를 거쳐갔습니다.

 

이 중 남성 포크 듀오 '트윈폴리오'는 그 감미로운 하모니를 주무기로 국내 최초의 포크 앨범을 발매해 장안에 충격파를 던졌으며 이 장르가 급속도로 젊은이들 사이에 퍼져나가도록 만든,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원래 '트윈폴리오'는 듀오가 아닌 트리오로 시작되었습니다. 무교동의 '세시봉'에서 '대학생의 밤'이란 코너의 사회를 맡고 있던 이상벽의 소개로 청중 앞에서 노래를 부르게된 송창식은 팝 음악을 자유자재로 요리하는 연대 포크 트리오 라이너스의 멤버인 윤형주의 솜씨에 반해 이익근 과 더불어 트리오 조직을 제안하였습니다.

 

이들은 가게 이름을 딴 '세시봉'이란 팀명으로 각종 라디오에 출연하며 ‘하얀 손수건’이란 곡을 히트시켰지만 몇 달 후 이익근의 군입대로 둘 만 남게 된 송창식과 윤형주는 팀 이름을 '트윈폴리오'로 정하고 새롭게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부잣집 아들이자 명문대생인 윤형주와 성악을 전공했지만 방 한 칸 없어 떠돌이로 생활하던 송창식의 드라마틱한 만남은 이후 두고두고 ‘불가사의한’ 사건으로 전설처럼 내려져 오고 있습니다.

 


이미 대학가를 중심으로 젊은이들의 절대적인 환대를 받고 있던 이들은 몇 차례의 성공적인 콘서트 후 '펄 시스터즈', '박연숙'과 함께 한 '김인배 작곡편곡집'이라는 앨범을 발표했는데, 여기에 수록된 (이미 인기곡이 되어버린) ‘하얀 손수건’ 등 당시 음악 감상실에서 연주하고 부르던 6곡의 번안곡은 대학생뿐만 아니라 여학생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특히 이들의 목소리에 반한 당시 경기여고 2학년생 양희은은 자신의 특활반에 이들을 초대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첫 앨범은 역사적으로 포크음악을 완벽한 메인스트림으로 자리잡는데 공헌을 한 앨범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전 곡을 번안곡으로 수록한 이 앨범은 초창기 포크의 외국 의존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지만, 당시의 젊은 정서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이기도 했습니다. ‘하얀 손수건’외에 ‘축제의 밤’, ‘고별’, ‘웨딩 케익’ 등이 크게 히트했으며 각종 방송 출연과 콘세트로 그 인기는 절정을 치달았습니다.

 

이 앨범은 당시의 주류이던 최희준, 이미자와 같은 가수들에게 내미는 도전장과도 같은 것 이였으며 기성세대와 젊은 층의 간극을 확실하게 벌렸던 충격적인 사건이었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 기타가 하나의 유행이 되도록 만든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앨범이었죠.

 

 

1969년 12월, 화려한 불꽃처럼 타오르던 이들은 갑작스런 팀 해체를 발표했는데, 집안의 반대로 짬짬이 활동했던 윤형주가 학업을 위해 경희 의대 본과로 학교를 옮겨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12월 21~22일 양일간 드라마센터에서 개최했던 마지막 공연은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며 마치 서태지와 아이들의 마지막 인사와도 같은 윤형주의 “이제 우리 트윈 폴리오는 그만 해체하려 합니다”라는 멘트는 수많은 10대 소녀 팬들의 가슴에 커다란 슬픔을 심어 놓았습니다.

 

공연 도중 송창식이 신중현의 ’떠나야할 그 사람’을 부를 때 두 멤버는 부둥켜안고 참고 있던 눈물을 떨어뜨렸으며 복받치는 감정을 추스릴 수 없었던 팬들 역시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이후 이들의 공연은 계속 이어져 무려 6차례나 비공식적인 고별공연이 있었으며 MBC, TBC 등의 공중파 방송들도 5차례나 고별공연을 방송하며 식지 않는 인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은퇴공연 직후 '튄폴리오 리사이틀'이란 음반을 발표(이 앨범은 이후 세 차례 재판을 찍었다)나 했던 이들은 해체 후에도 가끔 주위의 요청으로 몇 곡씩 행사장에서 노래를 불렀으며 조영남과 함께 '크리스마스캐롤음반', '조영남 리싸이틀쇼' 등을 발표했습니다.

 

송창식


해체 후 송창식은 솔로가수로 국내 최고 가수의 반열에, 윤형주는 최고의 작곡가 입성에 성공해 인기 스타로서 시대를 풍미한 이들은 1981년 기존의 음반과 비슷한 레퍼토리에 윤형주가 작사·작곡한 ‘축제의 밤’, 송창식의 ’우리’, ’빗속을 울며‘ 등을 추가해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1982년엔 ‘편지’, ‘축제의 노래’ 등이 수록된 금성사 판촉 카세트테이프를, 1988년엔 김세환과 더불어 책자가 들어있는 '하나의 결이 되어' 박스음반발표에 따른 기념공연을 열어 경이로운 화음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고,  이때부터 셋은 전국을 순회하는 콘서트를 주기적으로 가지며 아직까지도 포크의 전성시절을 잊지 못하는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창작곡보다는 미국의 포크송을 비롯하여 아메리카와 유럽의 팝송의 원곡과 번안곡을 노래했습니다.  그들이 불렀던 번안곡들은 서울을 비롯한 도시의 대학생과 고등학생에게서 높은 성원을 받으면서, 일명 ‘통기타 붐’을 일으켰고 외국 곡의 번안이 잘 이루어진 사례이자 또한 2인이 기타 연주와 함께 화음을 맞추어 노래하는 전범(典範)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 점에서 한국 포크송의 효시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2. 대표곡 감상 / 가사 / 멜로디악보

 

1) 하얀 손수건

 

헤어지자 보내온 그녀의 편지 속에
곱게 접어 함께 부친 하얀 손수건
고향을 떠나올때 언덕에 홀로 서서
눈물로 흔들어주던 하얀 손수건
그때의 눈물 자위 사라져 버리고
흐르는 내 눈물이 그 위를 적시네
헤어지자 보내온 그녀의 편지 속에
곱게 접어 함께 부친 하얀 손수건
고향을 떠나올때 언덕에 홀로 서서
눈물로 흔들어주던 하얀 손수건
그때의 눈물 자위 사라져 버리고
흐르는 내 눈물이 그 위를 적시네

 


2) 축제의 노래

 

달무리 지는 창문을 열면
싱그런 바람
꽃내음 속에 춤추던 여인
아름다워라
황홀한 달빛 꿈에 잠기면
다시 또 보이네 
축제의 밤
축제의 노래 함께 부르던
즐거운 날에
스치듯 만나 잊을 수 없던
그리운 여인
가버린 여인 눈에 어리면
다시 또 보이네 
축제의 밤
언제나 다시 오나
그리운 축제의 그 밤
금물결 달빛 속에
춤추던 그리운 여인
사모한 마음 서글픈 정은
가실 줄 모르네 
그리워서
가버린 여인 눈에 어리면
다시 또 보이네 
축제의 밤
언제나 다시 오나
그리운 축제의 그 밤
금물결 달빛 속에
춤추던 그리운 여인
사모한 마음 서글픈 정은
가실 줄 모르네 
그리워서

 


3) 고별

 

비에 젖었던 그 미움 속에
눈물 젖었던 그 사랑 속에
이제는 서로 헤어져야 하나
끝 없었던 사랑을 남기고
슬픔 잊었던 그 노래 속에
함께 울었던 그 사랑 속에
영원히 진정 헤어져야 하나
슬기롭던 추억을 남기고
가슴 아팠던 그 사연 속에
기약 말자던 그 언약 속에
이제는 영영 헤어져야 하나
울먹이던 나만을 남기고
비에 젖었던 그 미움 속에
슬픔 잊었던 그 노래 속에
눈물 젖었던 그 사랑 속에
함께 울었던 그 사랑 속에 


4) 더욱 더 사랑해

 

사랑은 한 순간에 꿈이라고
남들은 웃으면서 말을 해도
내 마음 모두 바친 그대
그 누가 무어라 해도 더욱 더 사랑해
미움은 사랑 속에 있다면서
달빛이 구름 속에 가리워도
한 마음 굳게 믿은 그대
가슴이 아프도록 더욱 더 사랑해
사랑은 한 순간에 꿈이라고
남들은 웃으면서 말을 해도
내 마음 모두 바친 그대
그 누가 무어라 해도 더욱 더 사랑해
[간주중]
미움은 사랑 속에 있다면서
달빛이 구름 속에 가리워도
한 마음 굳게 믿은 그대
가슴이 아프도록 더욱 더 사랑해
가슴이 아프도록 더욱 더 사랑해

 


5) 슬픈 운명

 

헤어지는 아픔을 잊기 어려워
미소 짓는 내 슬픈 운명
날 버리고 떠나 가는 님아
홀로 떠나면 난 어이 해
I love my father,
I love my mother
I love my sister,
I love my brother
I love my friends
and relatives too
I'll forsake them
all and go with you
즐거웠던 날은 다 지나가고
허무한 마음 가득 찼네
날 버리고 떠나가는 님아
홀로 떠나면 난 어이 해
To the queen of heart
he's the ace of sorrow
He's here today, he's
gone tomorrow
Young men are plenty
but sweethearts few
If my love leaves me,
what shall I do?
What shall I do? 

 


6) 행복한 아침

 

별은 잠이 들어요 꿈은 밤을 잊어요
멀리 종소리 들려오네
행복한 아침이 밝아 일어나서 창을 활짝 열면
저 하늘에 하얀 꿈이 서려 손짓하여 주는데
황홀한 햇빛이 서린 내 마음은 참을 수가 없네
그리운 님 나를 찾아오는 아침이기 때문에
마음 곱게 다듬어 꿈의 수를 놓아요
밤이 남겨 둔 안개 속에
행복한 아침이 밝아 일어나서 창을 활짝 열면
저 하늘에 하얀 꿈이 서려 손짓하여 주는데
황홀한 햇빛이 서린 내 마음은 참을 수가 없네
그리운 님 나를 찾아오는 아침이기에
별은 잠이 들어요 꿈은 밤을 잊어요
멀리 종소리 들려오네
행복한 아침이 밝아 일어나서 창을 활짝 열면
저 하늘에 하얀 꿈이 서려 손짓하여 주는데
황홀한 햇빛이 서린 내 마음은 참을 수가 없네
그리운 님 나를 찾아오는 아침이기 때문에
행복한 아침이 밝아 일어나서 창을 활짝 열면
저 하늘에 하얀 꿈이 서려 손짓하여 주는데

 


7) 웨딩케익

 

이제 밤고 깊어 고요한데 창밖을 두드리는 소리
잠 못 이루고 깨어나서 창문을 열고 내어다 보니
사람은 간 곳이 없고 외로이 남아 있는 웨딩케익
그 누가 두고 갔나 나는 아네 서글픈 나의 사랑이여
이 밤이 지나가면 나는 가네 원치 않는 사람에게로
눈물을 흘리면서 나는 가네 그대 아닌 사람에게로
이 밤이 지나가면 나는 가네 사랑치 않는 사람에게로
마지막 단 한번만 그대 모습 보게 하여 주오 사랑아
아픈 내 마음 모르는 채
멀리서 들려오는 무정한 새벽 종소리
행여나 아쉬움에 그리움에
그대 모습 보일까 창밖을 내어다 봐도
이미 사라져 버린 그 모습 어디서나 찾을 수 없어
남겨진 웨딩케익만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 흘리네
남겨진 웨딩케익만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 흘리네 우

 


8) 사랑의 기쁨

 

사랑의 기쁨은 어느덧 사라지고
사랑의 슬픔만 영원히 남았네
어느덧 해지고 어둠이 쌓여오면
서글픈 눈물은 별빛에 씻기네
사라진 별이여 영원한 사랑이여
눈물의 은하수 건너서 만나리
그대여 내사랑 어디서 나를 보나
잡힐듯 멀어진 무지개 꿈인가
사라진 별이여 영원한 사랑이여
눈물의 은하수 건너서 만나리
사랑의 기쁨은 어느덧 사라지고
사랑의 슬픔만 영원히 남았네

 


3. 아티스트 트윈폴리오 노래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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