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 프로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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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4월 21일 |
서울특별시 중구 | |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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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2월 4일 (향년 2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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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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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cm, 46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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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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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장규상, 어머니 이숙희
오빠 장현, 조카 장원 |
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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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흥인초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속여자중학교 (졸업) 안양영화예술고등학교 (연극영화과 / 졸업) 테네시 주립대학교 (작곡학과 / 중퇴) 벨먼트 대학교 (음악학과 / 중퇴) |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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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노래 '꼬마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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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이와 덕이'는 1975년 데뷔한 2인조 싱어송라이터 남매 듀엣/배우였습니다. 70~80년대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듀오 및 솔로로 활발히 활동하였으나, 정규 2집을 끝으로 1990년 남매 모두가 너무 일찍 아까운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목차)
1. 아티스트 현이와 덕이 스토리
2. 음반 및 앨범 정보
3. 대표곡 감상 / 가사 / 멜로디악보
4. 아티스트 현이와 덕이 노래 모음
1. 아티스트 현이와 덕이 스토리
1) 현이와 덕이
1975년 미8군부대에서 데뷔한 오빠 '장현'(1956~1990)과 여동생 '장덕(1961~1990)'은 이듬해인 1976년 '현이와 덕이'를 결성하고 가요계에 데뷔했습니다. 이들은 가요계뿐만 아니라 '선생님 안녕', '우리들의 고교시대', '내 마음 나도 몰라', '꿈초올 둘이서'등과 같은 영화에도 출연하였는데 10여편의 영화에 주연 또는 조연으로 출연하여 하이틴스타로서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특히 장덕은 작사,작곡 능력이 뛰어나 당시로서는 굉장히 특이했던 싱어송라이터로의 캐릭터를 가졌는데요,(장덕은 1977년 진미령이 부른 '소녀와 가로등'을 직접 작사, 작곡하여 제1회 MBC 서울국제가요제에서 최연소 작사/작곡가로 입상하였으며, 이후 3년 연속 이 대회에 입상하였습니다) 1978년 '현이와 덕이'는 그들의 첫 공식 레코드 모음집인 '꼬마인형', '소녀와 가로등', '일기장', '순진한 아이', '작은 소녀의 사랑이야기'등이 담긴 정규 1집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음반은 대중들에게 많은 인기를 받게 되었고 이는 1980년 장덕은 안양예고 졸업 후 미국 테네시 주립 대학교에서 작곡을 전공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83년 미국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장덕은 솔로앨범 발표와 함께 본격적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장현 또한 장덕이 유학할 동안 '현이와 거룩한 성'으로 음악 활동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그렇다가 1985년 현이와 덕이가 재결합하여 '너나 좋아해 나너 좋아해', '이젠 안녕', '뒤늦은 후회'등이 수록된 정규 2집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앨범이 크게 히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얼마 뒤 다시 해체하였고,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이후 1986년 장덕은 자신이 작곡하고 가수 이은하가 부른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이 크게 히트가 되었고, 연이어 장덕 솔로 정규 4집이 빅히트되어 그 해 가장 성공한 여성스타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님 떠난 후' - 골든컵 수상, '어른이 된 후에 사랑은 너무 어려워' - 빅히트 등)
1987년 장덕은 ABU 가요제에 한국대표로 나가게 되는 등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꾸준히 인정을 받고 있었으며, 오빠 장현 또한 코아기획을 설립하여 엔터테인먼트사 대표이사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활발히 연예활동을 하고 있던 이들 남매는 1989년 장덕 솔로 정규 6집 발표 후 장현이 설암판정을 받게 되자 모든 활동을 잠시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1990년 1월 장덕은 신년드라마 '구리반지'에 출연하여 오랜만에 연기를 선보였으나, 어릴 때부터 앓아 오던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수면제와 기관지 확장제를 과다복용 하여 안타깝게도 1990년 2월 4일 자택에서 사망하였고 같은 해 8월 장현 역시 설암으로 사망했습니다. 당시 우리는 기라성 같은 아티스트 둘을 동시에 잃었던 것이었죠.
2) 장덕
음악적으로는 오빠 장현 보다는 여동생 장덕에 대한 평가가 훨씬 더 많은 편이었는데요, 그녀는 당시 대한민국 음악계의 수준을 뛰어넘는 혁신적인 코드워크(코드 진행)와 보이싱(화성을 구성하는 음의 배치를 바꾸는 것)을 보여주면서도, 단번에 신드롬이 될 만큼 뛰어난 멜로디를 만들어냈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녀가 활동했던 시기에는 여자 싱어송라이터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던 때로, 1984년 데뷔한 이선희 조차 '여자가 감히 작곡을 한다'는 편견 때문에 1996년 10집에 와서야 자신이 작곡한 곡을 앨범에 실으며 본격적인 싱어송라이터 활동을 할 수 있었다지요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된 장덕의 작품 개수는 총 136개(2021년 기준)인데, 생전 약 300여곡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고, 현이와덕이 앨범 4장, 솔로 음반 9장, 참여 음반 33장, 10여 편 영화 출연(주연/조연)을 하였습니다.
그녀는 1961년 4월 21일 서울특별시 중구에서 1남 1녀 중 둘째이자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자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는데, 그녀의 아버지인 장규상은 서울시립교향악단 첼리스트였고 어머니는 서양 화가 이숙희였습니다. 그녀의 집안은 전형적인 예술가 집안이라 할 수 있었지만, 그러나 그녀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될 때 그녀의 부모는 이혼했습니다.
1975년 4월 만 13세가 된 그녀는 오빠와 함께 '드래곤 래츠'라는 듀엣명으로 통기타를 메고 아메리칸 엠버시 클럽에서 열린 미8군 주최의 파티 무대에서 'To Be A Child Again' 이라는 곡으로 데뷔했습니다. 남매는 이 공연을 통해 출연료도 받고, 아메리칸 엠버시 클럽의 쇼 매니저로부터 드래곤 래츠의 노래와 미모에 반했다는 찬사를 들으며 엘 클리나드를 통해 출연 계약까지 정식으로 요청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무대에서 남매는 곧바로 방송국 PD들의 눈에 띄어 스카우트 되었고, 1개월 뒤 TBC TV의 청소년과 젊은이들을 위한 프로그램 오라오라에 출연해 장덕이 작사 · 작곡한 '꼬마인형', '일기장'을 부르며 최연소 남매 듀엣으로 일반 무대에 데뷔하게 되었죠.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갈 무렵 4월 남매는 드래곤 래츠에서 '현이와 덕이'로 듀엣명을 바꾸고 '친구야 친구', '사랑한다고 말해주오' 등 3곡이 수록된 옴니버스 형식의 컴필레이션 음반 '친구야 친구'를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그해 11월 개봉된 김응천 감독, 임예진, 이덕화, 전영록 주연의 영화 '푸른교실'에서 오라오라에 출연해 불렀던 '꼬마인형', '일기장'을 OST로 발표하였죠.
1977년 5월 고등학교 1학년의 그녀는 가수 송창식이 그녀가 중학교 2학년 때 작사, 작곡한 '소녀와 가로등'을 장현이 기타 연주와 함께 노래를 불러주자 감탄을 하며 이후 서울국제가요제에 출품할 것을 적극 권했고 결국 송창식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소녀와 가로등' 신인가수 진미령에게 주며 작사, 작곡가로서 제1회 MBC 서울가요제에 출전하였습니다.
비숫한 시기 많은 영화에도 배우로 참여하였는데, 이 포스트에서는 이 부분은 다루지 않겠습니다.
1978년 7월 그녀는 제1회 MBC 서울국제가요제에서 오빠 장현이 부른 '더욱 큰 사랑'의 작사, 작곡가로서 출전, 2년 연속 MBC 서울국제가요제에서 입상하게 되었고 같은 해 '현이와덕이' 정규 1집이 발표되었습니다. 나아가 1979년 6월 제2회 MBC 서울국제가요제에서 장덕이 작사작곡하고 박경희가 부른 '사랑이었네'가 가야금상을 수상하며 그녀는 작사, 작곡가로서 3년 연속 MBC 서울국제가요제에서 입상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같은 달 그녀는 지구레코드와 계약하며 솔로 데뷔 음반 '첫사랑'을 발표했습니다.
1980년 10월 그녀는 어머니가 살고 있는 미국 테네시주의 내슈빌로 유학을 가게 되었는데요, 내슈빌은 컨트리 뮤직의 메카로 일컬어지는 곳으로 이 곳에서 벨몬트 칼리지 음악과에 입학, 대학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1981년 그녀는 비싼 등록금으로 인해 벨몬트 칼리지 음악과에서 한 학기를 마친 뒤 테네시 주립대학교 실용음악과로 옮기게 되며 그 곳에서 음악의 기초 · 이론 · 감상 · 작곡 · 작곡 기법 등을 전문적으로 배우게 되었습니다.
1981년 이곳의 한인모임에서 만난 한 남자와 결혼을 했지만, 끊임없는 향수병으로 고생을 했고, 결국 메모 한 장만을 남기고 한국으로 귀국, 한남동에서 자취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귀국 한 달 뒤 서라벌레코드와 전속계약을 맺고 타이틀곡 '날 찾지 말아요'를 비롯 '안녕히 계세요', '가을에 만난 소녀', '철없는 안녕' 등의 곡들이 수록된 정규 음반 '날 찾지 말아요'를 발표했습니다.
또한 그녀는 새 음반을 계획하고 있는 자매 듀엣 국보자매에게 '백치미', '사랑하고 있나봐요'를 작사작곡해 주기도 했는데 국보자매는 현이와 덕이에 의해 발표된 바 있는 '끝없는 마음이야', '첫사랑'까지 리메이크하여 1984년 2월에 발매된 자신들의 새 음반에 수록했습니다. 1984년 11월에는 타이틀곡 '사랑하지 않을래'를 비롯 '사랑의 꿈', '사랑과 인생' 등의 곡들이 수록된 정규 2집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대중의 반응은 냉담한 편이었고 이에 그녀는 매우 실망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대부분의 시간을 방에 틀어박혀 우울히 보냈고 식음을 전폐하며 세상에서 버려진 아이처럼 혼자만의 세계에서 신음하였습니다. 동생의 이런 안타까운 소식에 현이와 거룩한 성의 리더이자 보컬로서 활동하고 있던 오빠 장현이 1985년 4월 울산에서 서울로 상경, 장덕에게 현이와 덕이의 재결성을 제안하게 되었습니다.
1985년 6월 장현 · 장덕 남매는 7년 만에 재결합, 현이와 덕이를 결성하며 타이틀곡 '너나 좋아해 나너 좋아해'를 비롯 '이젠 안녕', '그대의 투정', '해바라기 사랑' 등의 곡들이 수록된 정규 2집 '너나 좋아해 나너 좋아해'를 발표하였습니다. 앨범의 타이틀곡 '너나 좋아해 나너 좋아해'가 단숨에 가요순위 10위권 내에 들며 인기를 끌었고 그녀의 막힌 숨통을 트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남매는 지향하는 음악이 서로 달랐고 결국, 그녀는 다시 솔로 활동을 준비하게 되었죠.
1986년 5월에는 그녀가 작곡한 곡들 중 가장 훌륭한 곡으로 평가받으며, 그리고 훗날 수많은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 되는 리듬앤블루스(R&B) 스타일의 곡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이 동료가수 이은하에 의해 발표되었고 한 달후 1986년 6월 솔로 정규 3집 '님 떠난 후'가 발표되었습니다. 타이틀 곡 '님 떠난 후'는 다시 한 번 공전의 빅 히트를 기록했고, 각종 인기 순위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하였었죠. 1986~87년 그녀는 제 2의 전성기를 보내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성공한 여자 가수들 중 한명으로 인정받았습니다.
1987년 7월 그녀는 타이틀 곡 '이런게 아니었는데'를 앞세운 정규 4집 '이런게 아니었는데'를 발표했구요, 1988년 9월 김파, 김범룡과 함께 작업한 타이틀 곡 '얘얘'를 비롯해 '내 말 좀 들어요' 등의 곡들이 수록된 정규 5집 '얘얘'를 발표했습니다.
1989년 2월 오빠 장현은 그동안의 밤무대 일을 모두 청산하고 본격적으로 장덕의 매니지먼트로서의 일을 하기 위해 여의도에 코아기획이라는 프로덕션을 설립하였으나, 새 앨범 '예정된 시간을 위해'의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을 때였던 1989년 6월 18일 장현은 갑작스럽게 국립의료원에서 설암 3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오빠 장현이 설암으로 쓰러지게 되자 그녀는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오빠의 병간호를 하였지만 1990년 8월 장현은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이전 1990년 1월 그녀는 어릴 때부터 앓아 오던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수면제와 기관지 확장제를 과다복용하여 안타깝게도 1990년 2월 4일 자택에서 사망하였습니다.
2. 음반 및 앨범 정보
발표연도 | 음반형태 | 수록곡 및 내용 |
1976년 | 컴필레이션 | 친구야 친구 (3곡) - 대표곡 : 친구야 친구, 사랑한다고 말해주오, 둥글둥글한 세상 |
1978년 | 정규 1집 | 순진한 아이 (12곡) - 대표곡 : 꼬마인형, 소녀와 가로등, 일기장, 순진한 아이, 작은소녀의 사랑이야기 등 |
1978년 | 캐럴 | 디스코 크리스마스 (7곡) - 대표곡 : 징글 벨, 루돌프 사슴코, 실버벨, 싼타할아버지 오시네 등 |
1985년 | 정규 2집 | 너나 좋아해 나너 좋아해 (12곡) - 대표곡 : 너나 좋아해 나너 좋아해, 이젠 안녕, 뒤늦은 후회, 잠깐, 해바라기 사랑 등 |
3. 대표곡 감상 / 가사 / 멜로디악보
1) 날 찾지 말아요
날 찾지 말아요
날 그냥 내버려 둬요
아무리 애써도
당신께 돌아 가긴 싫어요
처음부터 우리 둘은
만나지 말아야 했어요
철 없던 소녀가
사랑을 했던 거예요
난 사랑을 몰라요
사랑을 할 줄 몰라요
이제 다시는 다시는
사랑에 빠지지 않을래
혼자 있고 싶어요
밤 하늘 벗을 삼아서
날 잊어주세요
저를 그냥 그냥 내버려 둬요
난 사랑을 몰라요
사랑을 할 줄 몰라요
이제 다시는 다시는
사랑에 빠지지 않을래
혼자 있고 싶어요
밤 하늘 벗을 삼아서
날 잊어주세요
저를 그냥 그냥 내버려 둬요
저를 그냥 그냥 내버려 둬요
2) 예정된 시간을 위해
나 이제는 너를 잊으려 하네
아직 못다한 사랑을 여기에 남긴채
나 이제는 나의 길을 가야만 하네
아직 모르는 곳이지만 너를 두고 가려하네
수많은 별들이 가득한 이밤
창가에 스치는 얼굴들
모든것이 여기에 있는데
내가 정말 떠나야 하는지
잊지 말아요. 우리의.사랑을
잊지 말아요. 그날의 기억들을
이제는 시간이 됐어요
그대여 안녕
3) 너 나 좋아해 나 너 좋아해
속절없이 흐르는게 시간이야
세월가도 모르는게 사랑이야
안개처럼 가리워진 마음이야
샛별처럼 빛나는게 사랑이야
어제도~ 어제도~ 오늘도~ 오늘도~
내일도~ 변함없이 듣고 싶은 말.말.말..
너 나 좋아해 나 너 좋아해
너 나 좋아해 나 너 좋아해
매일매일 하고 싶은 이야기야
두근두근 설레이는 순간이야
둘이서만 주고 받는 사랑이야
너 나 좋아해 나 너 좋아해
간주 중
속절없이 흐르는게 시간이야
세월가도 모르는게 사랑이야
안개처럼 가리워진 마음이야
샛별처럼 빛나는게 사랑이야
어제도~ 어제도~ 오늘도~ 오늘도~
내일도~ 변함없이 듣고 싶은 말.말.말..
너 나 좋아해 나 너 좋아해
너 나 좋아해 나 너 좋아해
매일매일 하고 싶은 이야기야
두근두근 설레이는 순간이야
둘이서만 주고 받는 사랑이야
너 나 좋아해 나 너 좋아해
둘이서만 주고 받는 사랑이야
너 나 좋아해 나 너 좋아해
4) 뒤늦은 후회
창밖에 내리는 빗물소리에
마음이 외로워져요
지금 내곁에는 아무도
아무도 없으니까요
거리에 스치는 바람소리에
슬픔이 밀려와요
눈물이 흐를것만 같아서 살며시
눈감았어요
계절은 소리없이 가고요
사랑도 떠나 갔어요
외로운 나에겐 아무것도 남은게 없고요
순간에 잊혀져갈 사랑이라면
생각하지 않겠어요
이렇게 살아온 나에게도
잘못이 있으니까요
계절은 소리없이 가고요
사랑도 떠나 갔어요
외로운 나에겐 아무것도 남은게 없고요
순간에 잊혀져갈 사랑이라면
생각하지 않겠어요
이렇게 살아온 나에게도
잘못이 있으니까요
5) 님 떠난 후
사랑했던 사람은 곁에 없지만
사랑했던 마음은 남아 있어요
홀로 남아 이렇게 생각해봐도
어쩌면은 그것이 잘된 일이야
어느 날 우연히 사랑을 알게 됐지만
사랑을 하면서 슬픔은 커져만 가고
서로가 서로를 더 깊이 이해 못하며
우리의 갈등은 자꾸만 커져 갔지요
나 혼자면 어때요 난 아직 어린걸
슬퍼지면 어때요 울어버리면 되지
떠난 님이 그리워 방황하고 있어요
미워할 수 없는데 어떻게 하나
어느 날 우연히 사랑을 알게 됐지만
사랑을 하면서 슬픔은 커져만 가고
서로가 서로를 더 깊이 이해 못하며
우리의 갈등은 자꾸만 커져 갔지요
나 혼자면 어때요 난 아직 어린걸
슬퍼지면 어때요 울어버리면 되지
떠난 님이 그리워 방황하고 있어요
미워할 수 없는데 어떻게 하나
나 혼자면 어때요 난 아직 어린걸
슬퍼지면 어때요 울어버리면 되지
떠난 님이 그리워 방황하고 있어요
미워할 수 없는데 어떻게 하나
6) 소녀와 가로등
조용한 밤이었어요 너무나 조용했어요
창가에 소녀혼자서 외로이 서있었지요
밤하늘 바라보았죠 별하나 없는 하늘을
그리곤 울어버렸죠 아무도 모르게요
창밖에 가로등불은 내 맘을 알고 있을까
괜시리 슬퍼지는 이 밤에 창백한 가로등만이
소녀를 달래주네요
조용한 이 밤에 슬픔에
지친 소녀를 살며시 달래주네요
창밖에 가로등불은 내 맘을 알고 있을까
괜시리 슬퍼지는 이 밤에 창백한 가로등만이
소녀를 달래주네요
조용한 이 밤에 슬픔에
지친 소녀를 살며시 달래주네요
4. 아티스트 현이와 덕이 노래 모음